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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09.06.26 모스타르[Mostar] Full Nature 3

모스타르[Mostar] Edge of Peace on the Bridge.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 멀리 보이는 저 다리 이름이 Stari Most.
저 다리에서 마을의 지명이 연유하지 않았을까.
 
오래전엔 다리를 중심으로 한 편엔 카톨릭교인들이 다른 한 쪽에는 무슬림들이 별 문제 없이 살아왔으나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크로아티아계(카톨릭)의 공격에 의해 다리는 무너지고 관계는 악화된다.
전쟁 후 다리는 재건되고 상처와 앙금을 가슴에 묻고, 다시금 더불어 잘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마을 주민 몇몇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지는 않아보인다. 서로의 형제를 죽인 기억이 그리 쉽게 잊힐리 없다.
아직도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지금도 상대편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일들은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한 건가.












다리 위 관광객들.



위의 다이버들. 이 마을 젊은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리위에서 다이빙을 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은 돈 주면 대신 뛰어내려 주는. 꽤 높다.



거리 상점의 물건들.  1년째 내 컴퓨터 바탕화면.



항상 손님이 많은 마이다'룸! 신발장이 모자란다. 나중에 침대가 꽉 차자 마이다가 예전에 살던 집까지 손님 용으로 내놓더라. 



푸딩 비스무리. 마이다가 디저트를 만들어줬다. 저녁이면 이곳(발코니)에 모여 웃고 떠들며 즐긴다.



친절한 아줌마 '마이다'와 그의 유쾌한 동생 '바타'를 어떻게 잊겠나. 꼭 보스니아 국기를 배경으로 찍어 달란다.
아줌마라고 부르면 싫어한다. 결혼 전인듯 싶으니 누나라고.  



유로2008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앞두고 꼬마들이 집밖으로 뛰어나와 응원을 펼친다.
그러나 여기는 보스니아. 이들을 향해 손 흔드는 건 나 뿐이다.



론니의 모스타르 지도는 너무 작다. 지도 밖으로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조형물. 마을 구석 언덕에 있다.






관리는 잘 안하는 듯.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갑작스런 소나기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의 반복. 지친다. 동네 마실 정도나 하는 수밖에









총알자국 포탄자국 재건축되지 않은 건물들.





















멀리 보이는 모스크와 교회의 첨탑. 코소보에서의 최악을 보고 난 뒤여서 그랬는지 나름 가슴이 벅차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뒤에 이 정도라도 공존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코소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아니던가.
평화를 향한 첫걸음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다. 여전히 용서하기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비 오는 사진이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저 돌 바닥을 비를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다.
빵이 지겨워져 케밥과 유사한 형태의 꼬치를 사먹기도. 
마을 남쪽 산 꼭대기의 대형 십자가는 예수님의 그것이 진정 맞는건지 내내 불편했다.  






남들도 다 찍는 론니플래닛에 나오는 사진과 비슷한 각도.










 Don't Forget
잊지 말자는 몇가지 다짐.
여기. 그 때. 그리고, in your head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 대해 특히 이곳 모스타르와 사라예보를 잘 설명한 블로그가 있어 소개한다.
http://blog.naver.com/warrenhur 
발칸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 듯하다.
사진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찍고 편집되었으나 그렇게까지 반응해도 무방한 곳이
바로 여기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연방이다.

모스타르[Mostar] Full Nature

예상보다 모스타르에 오래 머물렀다. 해볼 수 있는건 다 해보자는 차원에서 Bata(바타)의 투어에 참가했다.
단체관광이라니. 어떻게든 보스니아 곳곳을 보려면 방법이 없다.
한국에서나 보던 봉고차를 타고 나선 Bata`s tour! 만족.

 40분쯤 시골길을 타고 달리니 POCITELJ에 도착(정확한 발음을 몰라 한글로 지명을 못옮기겠다)
13세기 언젠가 헤르체고비나의 성으로 투르크제국의 공격을 저지하던 곳이라고. 폐허가 된 성 아래엔 중세시대 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보스니아 중심부로 가는 도로와 강은 이곳뿐.

관광지로 개발하려는지 조그만 갤러리도 보였고, 오래된 모스크도 보수공사중. 물건파는 아이들도 있지만 순박하다.


Bata는 착한편(?).


성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Neretva 강과 근처 마을.


일행중 동양 여자가  있어 사진찍어달라 했더니 자기는 미쿡사람이란다 젠장.


오래된 마을의 문이 한국의 그것과 비슷한 정겨움이 묻어난다








보스니아는 어디를 가더라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저 멀리 폭포가 보인다. 여기가 KRAVICE


그래서 봉고차를 세우고, (나름 벤츠다 ;;;)





물가로 뛰어들었다. 초여름이지만 정말 추웠다. 꽤나 깊은데도 생각없이 덤비다가 익사할지도 모른다.
물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수영을 잘한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저 멀리 폭포 아래까지 간 녀석들도 있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난 추웠다. 몬테네그로 구멍가게에서 산 내 수영복.





다음코스는 Medugorje 라는 가톨릭 성지인데 virgin Mary를 기념한 뭔가 있는 듯 했지만 보스니아 까지 와서 기독교 문명보고 싶지 않아 패스.
그래서 대신 간 또 다른 중세 성의 흔적. ('중세'는 아무리 봐도 정치적 단어지만 마땅히 다른 단어 못찾겠다)


여기저기 데려다니다가 머무른 이곳은 당시의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볼일을 보는지 한참 설명했지만 기억 나지 않는다. 영어 기억력의 한계.





위 성주변 근처에 마굿간이 있었다. 바타는 종종 오는 듯했고, 많지 않은 돈을 내면 말을 탈수 있다.
그러나 저 동양계 미쿡아가씨가 말을 잘 다루지 못해 넘어졌고, 주인장은 전원의 요금을 받지 않았다.


투어의 마스코트. 첫번 들른 마을에서 태워서 물건을 팔거나 설명을 할줄 알았는데. 말그대로 동네 놀러나온 꼬마를
바타가 데리고 놀아준거였음. 귀여웠다.





투어다 보니 나혼자 굶기도 뭐해서 요리를 시켰다. 나쁘지 않았고, 보스니아 맥주도 나름 운치있었다.





Blagaj. Buna 강의 발원지가 저 동굴 아래 어딘가. 물은 얼음장처럼 차고, 그야말로 콸콸 쏟아져 나온다. 다이버들이 수원지를 찾아 몇차례 들어갔지만
수킬로미터는 될듯한 거리에 질려서 나왔다고. 바타의 설명일 뿐이니 정확할런지는...


이 건물은 Tekija 라는 16세기 만들어진 이슬람 수도원이다.





어둑어둑해져 창문에 불이 켜지니 분위기가 좀 난다.


수도원은 키스 금지. 다행.





같이 다니던 애들.  윗 사진의 꼽슬머리 청바지는 이태리 애. 나머지는 호주와 캐나다 애들.


보스니안 커피. 여기 오면 무조건 먹어야한다고 했다. 돈은 안받더라. 터키스타일이고. 쓰다.


모스타르 기차역. 요상하게 생긴 기차를 타고 사라예보로 ㄱㄱ싱

마이다의 동생 바타는 끊임없이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욕을 해댔다. 뭐 예상은 했던 바다.
주로 돈 많은 크로아티안이 마을 주변 땅을 사면서 크로아티안 마을을 점차 넓혀가 자신들은 갈곳이 없단다.
 세르비아의 총칼이나 크로아티아의 돈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게 그의 설명.

때마침 유로 2008 스웨덴 경기를 하던 때. 이브라히모비치(보스니아출신)의 플레이를 보고 열광하는
나와 의기투합했다. 보스니아 내전을 피해 제3국으로 망명한 이브라히모비치의 부모.
아버지는 크로아티아계 어머니는 보스니아계. 전쟁과 다툼 중 적국의 남녀가 만난 것.
그리고 그들의 아들은 TV에 나와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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