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 해당되는 글 4건

  1. 2009.07.01 모스타르[Mostar] Edge of Peace on the Bridge. 1
  2. 2009.05.22 사라예보[Sarajevo] Welcome to Sarajevo 1
  3. 2009.05.17 사라예보[Sarajevo] Did you have a fun?
  4. 2009.04.21 비소코 [Visoko] Explosive Explorer 1

모스타르[Mostar] Edge of Peace on the Bridge.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 멀리 보이는 저 다리 이름이 Stari Most.
저 다리에서 마을의 지명이 연유하지 않았을까.
 
오래전엔 다리를 중심으로 한 편엔 카톨릭교인들이 다른 한 쪽에는 무슬림들이 별 문제 없이 살아왔으나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크로아티아계(카톨릭)의 공격에 의해 다리는 무너지고 관계는 악화된다.
전쟁 후 다리는 재건되고 상처와 앙금을 가슴에 묻고, 다시금 더불어 잘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마을 주민 몇몇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지는 않아보인다. 서로의 형제를 죽인 기억이 그리 쉽게 잊힐리 없다.
아직도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지금도 상대편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일들은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한 건가.












다리 위 관광객들.



위의 다이버들. 이 마을 젊은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리위에서 다이빙을 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은 돈 주면 대신 뛰어내려 주는. 꽤 높다.



거리 상점의 물건들.  1년째 내 컴퓨터 바탕화면.



항상 손님이 많은 마이다'룸! 신발장이 모자란다. 나중에 침대가 꽉 차자 마이다가 예전에 살던 집까지 손님 용으로 내놓더라. 



푸딩 비스무리. 마이다가 디저트를 만들어줬다. 저녁이면 이곳(발코니)에 모여 웃고 떠들며 즐긴다.



친절한 아줌마 '마이다'와 그의 유쾌한 동생 '바타'를 어떻게 잊겠나. 꼭 보스니아 국기를 배경으로 찍어 달란다.
아줌마라고 부르면 싫어한다. 결혼 전인듯 싶으니 누나라고.  



유로2008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앞두고 꼬마들이 집밖으로 뛰어나와 응원을 펼친다.
그러나 여기는 보스니아. 이들을 향해 손 흔드는 건 나 뿐이다.



론니의 모스타르 지도는 너무 작다. 지도 밖으로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조형물. 마을 구석 언덕에 있다.






관리는 잘 안하는 듯.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갑작스런 소나기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의 반복. 지친다. 동네 마실 정도나 하는 수밖에









총알자국 포탄자국 재건축되지 않은 건물들.





















멀리 보이는 모스크와 교회의 첨탑. 코소보에서의 최악을 보고 난 뒤여서 그랬는지 나름 가슴이 벅차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뒤에 이 정도라도 공존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코소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아니던가.
평화를 향한 첫걸음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다. 여전히 용서하기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비 오는 사진이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저 돌 바닥을 비를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다.
빵이 지겨워져 케밥과 유사한 형태의 꼬치를 사먹기도. 
마을 남쪽 산 꼭대기의 대형 십자가는 예수님의 그것이 진정 맞는건지 내내 불편했다.  






남들도 다 찍는 론니플래닛에 나오는 사진과 비슷한 각도.










 Don't Forget
잊지 말자는 몇가지 다짐.
여기. 그 때. 그리고, in your head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 대해 특히 이곳 모스타르와 사라예보를 잘 설명한 블로그가 있어 소개한다.
http://blog.naver.com/warrenhur 
발칸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 듯하다.
사진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찍고 편집되었으나 그렇게까지 반응해도 무방한 곳이
바로 여기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연방이다.

사라예보[Sarajevo] Welcome to Sarajevo

모스타르에서 사라예보로 오는 기차길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몇 번이고 중간에 뛰어내리고 싶었을 정도.
역시 중요한 순간에는 사진이 없다. 카메라 뒤적거리기도 싫었고, 카메라 때문에 한쪽 눈만으로 담기에 아쉽고.
무엇보다 내가 이 위대한 풍경을 표현하지 못할거라는 자신없음.  
 
어쨋든. 사라예보는 총알자국으로 나를 맞았다.


사라예보의 가이드북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내전중 몇 명이 죽은 거리. 폭탄 한방에 수십명이 몰살한 시장. 수만권의 책이 불타오른 도서관.


내전 시 유일하게 안전했다는 홀리데이 인 호텔. 영화 '웰컴투 사라예보'에서 봤던 바로 그.
이 반대편이 스나이퍼의 거리. 기자고 뭐고 나오면 다 쐈다던데.


내가 묵은 해리스 호스텔의 사무실. 저곳은 리셉션이고 위쪽 언덕길로 10분정도 올라가면 숙소가 위치.
가격은 아주약간 비싸지만 모스타르에서 만났던 여행자들을 피하기 위해 옮겼다.
일하는 친구도 친절하고(다른 호스텔에 묵는 애들도 픽업해줬다)
 가격도 흥정가능. 사라예보의 저렴한 숙소는 1박에 10-12달러 수준.  





사라예보 로즈!
폭탄자국을 없애지 않고 붉은 색을 페인트를 채워 넣었다. 그때를 잊지 말자는 다짐.








올림픽뿐아니라 챔피언스리그도 여기서 열렸었다. 만 여 명이 죽었다. 부상자 숫자는 셀수도 없단다. 최근 인구가 많이 늘어 7만 명인데.
한 집에 한 두명은 죽었단 얘긴가. 저렇게 둘러싸고 포격을 해대니 살아난게 이상타.  프리 보스니안 테리토리(안전지역)로 가기 위해선
공항을 지나야 했고, 그 지하로 사람들이 도망치고 식료품을 운반해 나머지 사람들이 버틸수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 설명해준 이는 지하터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끼용 총알받이들이 공항 위를 달렸다고도 한다.(약간 과장한듯)


터널 박물관. Tuunel of Hope로도 불린다. 4년 동안 외부세상과 연결된 통로는 이곳뿐.








지금은 일부 구간만 남아있다.





길위에 탄피(불발탄은 아닌듯)가 박혀있다.


근처 민가의 총알자국들. 주소도 터널 25번지다.


느낌표 교통표지판도 있었던가.


사라예보 공항.








유럽형 외모를 지닌 이들이지만 안식일이면 모스크가 붐빈다. 문화는 좀 다르다. 술 담배 등의 규약에서는 자유로와 보였다.





쏟아진는 총알은 철문으로 막을 수 밖에 없었겠지.


도시와 영 어울리지 않던 EU 건물.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묘지들이 가득하다.
숙연해지는 이유는 묘비에 새겨진 날짜는 거의가 1992년부터 1995년 사이라는 것.














역사박물관 외벽.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지만 박물관의 대부분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전쟁잔해가 차지하고 있다.
총알자국에 별이라니. 무슨의미일까.


이것도 역사박물관 앞.


더 이상의 전쟁이 없길 바라는 이들의 염원 횃불. 종전이후로 꺼지지 않았다고 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앞으로도 꺼지지 않길.








모스크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처자. 영어 잘하더만.

모자이크 국가.
일곱개의 국경. 여섯개의 공화국, 다섯개의 민족, 네 개의 언어, 세 개의 종교, 두 개의 문자, 하나의 국가.
과거 유고슬라비아를 설명하던 단어다.

그중에서도 가장복잡한 이 곳.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금도 사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크로아티아인 이슬람교도)과
스르프스 공화국(세르비아인)으로 나뉜 어정쩡한 형태.
인종청소를 주고받던 그들이 사이좋게 지낼리 없지만.
자기네 땅을 그렇게 나눠 줘야했을 그들을,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안녕. 축축한 바람과 피빛 노을, Don't forget!

사라예보[Sarajevo] Did you have a fun?


부코예비나.

세르비아어로 '늑대들이 재미 보는 곳'이라는 뜻.
 세르비아 사람들이 외진 장소를 따로 부르는 말이다. 피터 마쓰는 'Love thy neighbor'에서
사람을 죽이기에 완벽한 장소라고 감상한다. 물론 사라예보는 외진 장소가 아니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약간은 동양적이기도 한 건물들과 사람들. 광장이름은 남기지 않아도 되겠지.









트램을 타고 조금 나가면 아담한 연못(Vrelo Bosne)과 공원이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곳은 연못에 가기까지의 가로수길.
3km에 이르는 길이는 부담스럽기보단 상쾌했다. 언젠가 동유럽을 다시 온다면 그때도 여기서 쉬겠다.











빠싹 마른 몰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 시계는 유럽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시내 구경다니다가 아파트 촌에 신기한 리프트(곤돌라?)가 있어서 타봄. 물론 돈내는 거였는데 모르는척했더니 걍타랜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묘지들이 나온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무서운 언니들.








모스크 사이사이에 교회들도 보인다. 미사인지 예배인지 하는데 말을 못알아먹으니.





동유럽은 정말 주말만 되면 뭔가 보여준다. 불가리아 세르비아와는 또 느낌이 새로운 민속 음악과 춤들.
조금 더 소박하고 정겨워 보이는 건 착각이자 편애일지도 모르겠다.























뭐. 프리 허그 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Miljacka river. 보이는 다리에서 아프리카 내전을 주제로한 사진전이 있었다.





기차시간 남아서 시작한 퍼즐. 하다보니 애들이 구경하다가 커피도 갔다준다.





몇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에서 가장 쎅시한여자가 많은 나라가 어딘지 알아? "
"난 사실 어디든 다 -_-;;"
"우크라이나 폴란드 보스니아!!!"
나도" 훗. 그렇군. 좋은 정보야"라고 받아쳤지만
그들의 과거와 오늘을 생각했을때 코피나도록 씁쓸한 얘기다..

비소코 [Visoko] Explosive Explorer

몬테네그로 국경을 넘으며 들른 휴게소에서 한 보스니안이 말했다.
그 : "너 이집트에서 왔다고 했지? 피라미드 봤겠네?"
나 : "어. 그거 졸라 멋져"(여행와서 들인 못된 영어 습관. 크래이지 남발)
그  : "우리나라에도 피라미드 있어. 여기 피라미드가 훨신크고 오래된거래."
나 : "웃기시네"(론니플래닛 등 가이드북에는 나오지 않는다)
그 : "진짜야!! 거짓말이면 알라가 나 가만 안둔다!"
나 : "(알라가 너 신경쓸 틈이 어딨냐만... 쪼끔 흥미로워지기 시작). 속는 셈치고 함 가볼께. 가는 방법 좀 알려줘"


그래서 오게 된 이곳 비소코. 언덕이름은 비소시카(Visocica)던가?
세미르 오스마나기치라는 탐험가 겸 고고학자(인디아나존스네;;;)가 발견했다는데, 발굴을 몇년해도 크게 이슈화시키진 못한 듯 하다.
사실 피라미드는 이집트의 전유물은 아니라고 한다. 중국과 몽골에도 수십개가 발견됐고. 남미에서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뭐 그럴수도 있잖은가. 그 옛날 일을 일일이 어찌아나.
괜히 거기에 민족주의따위 얼토당토않은 의미 집어넣는 사람들만 없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근데 이번 여행 중 가장 큰 비가 내렸다.




동네는 매우 작다. 아래 사진의 길가에 군청이나 경찰서 같은곳이 몰려 있고, 대부분은 시골 집들이다.


오래되고 특이하게 생긴 모스크. 보스니아 어디를 가든 볼 수 있는 그 것. 묘지.





그냥 쌓여있는 돌더미. 이 산에는 고대엔 피라미드가, 중세시대엔 꽤 유명한 성(Kraljevski grad Visoki)이 있었다. 그 성의 흔적들.


내가 올라간 곳은 태양의 피라미드라 불리우는 곳. 건너편에 보이는 이 곳이 달의 피라미드. 피라미드는 알다시피 3개가 한 쌍이다.
물론 여기도 옆에 하나 더 있다. 그럴싸하다.


길이 좁고 비는 내리고 이 길에서 조금 더 올라가 성 구경만 하고 내려옴. 어라 사진은 왜 없는건가 ;;;








비소코 방문 컨셉은 여행이라기보다는 탐험에 가까웠다. 그러나 장대비와 약간의 두려움은 모험심을 버리게 만들었다.

                                            보스니아서 전쟁 잔해물 폭발…2명 사망·3명 부상
                                            뉴시스 세계 | 2008.05.19 (월) 오후 11:27
                                             2명이 숨지고 3명이 부상했다고 보스니아 라디오 방송이 19일 보도했다. 이날 사고는 사라예보에서 북동쪽으로 30여㎞ 떨어진
                                    비소코 마을 인근에서 발생했으며 사고 당시 인부는 내전 당시 설치한 폭탄을 제거하는 작업을 벌였던 것으로...

DMZ에서도 비오는 날이면 심심치 않게 비에 떠내려온 지뢰들이 터지곤 한다. 불과 며칠 전에 사고가 터졌다.
발굴현장에는 결국 못갔다. 비가와서 그런지 동네에 사람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물어봐도 잘 모른다고 하고. 영어도 잘 안 통했고. 그런다고 택시를 타진 않는다. 곧죽어도 백팩커니까.

그냥 혼자서 2-3시간 가량 산길을 해메다가 내려왔다. 더 깊숙히 들어갈 자신은 없더라.

괜찮다 난 안죽었다.
 비소코 피라밋에 대한 더 많은 정보들은 구글링을 하면 쉽게 만날 수 있다.
비소코의 웹사이트도 있다(http://www.visoko.co.ba/fotokorner.php?go=piramida)

아.. 이 외진 곳에서도 중국식료품가게를 스쳤다. 뭐하는 놈들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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