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에 해당되는 글 26건

  1. 2009.07.08 드라가나[Dragana] Stranger 1
  2. 2009.07.07 프리즈렌[Prizren] Unfinished 1
  3. 2009.07.06 프리슈티나[Prishtina] Fake Peace 1
  4. 2009.07.05 부드바[Budva] Almost Paradise 2
  5. 2009.07.03 코토르[Kotor] Vestiges of Medieval 1
  6. 2009.07.02 듀브로브닉[Dubrovnik] Rubberneckers
  7. 2009.07.01 모스타르[Mostar] Edge of Peace on the Bridge. 1
  8. 2009.06.26 모스타르[Mostar] Full Nature 3
  9. 2009.05.22 사라예보[Sarajevo] Welcome to Sarajevo 1
  10. 2009.05.17 사라예보[Sarajevo] Did you have a fun?

드라가나[Dragana] Stranger

늦은밤 베오그라드에서 출발한 버스는 가로등 하나 없는 길을 잘도 달렸다.
아. 그렇다. 집집마다 불켜진 곳이 별로 없다. 세르비아에서 전기랑 수도 끊으며 협박한다던데 사실인가.
혹시라도 코소보에 들어가지 못할까봐 겁도 났다. 캄캄한 시골길을 쉬지 않고 달려
검문소에 도착했다. 역시 버스에 타고 있는 외국인은 나 혼자. 내려서 어렵게 설명했는데도
여권을 돌려주지 않는다. 버스에 가서 또 기다리다보니 북조선인지 남조선인지 묻는다.
좀 있으니 가방도 뒤진다. 버스 같이 탄 사람들한테 미안하기도 하고.

결국 다른 승객들이 불만을 터뜨렸고, 국경(?)의 KFOR이 한마디 남긴다

'Be careful'
좀 무서워졌다.

그렇게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자 한 마을에 당도했다. 저 멀리 만년설도 보이네.



염통이 쪼그라든 본인은 버스에서 눈치만 보다 종점까지 가고만다. 그렇게 온 곳이 드라가나 Dragana(혹 다른 표지판은 Dragona)



정말 차도 몇대 안다니는 깡 시골. 느낌상 알바니아로 넘어가는 산길 근처의 산촌인듯.
오가는 산길의 드라이브는 나쁘지 않았다. 길을 잃고 목적지를 잃은 당혹감을 가라앉힐 정도.



새벽에 내가 타고 온 버스. 이 버스가 오후에나 다시 세르비아로 간단다. 이런 완전 시골에 와버렸네.



산꼭대기서 골짜기 따라 눈이 남아있다. 이 곳도 햇볕은 따갑지만 시원한편.



유럽에 와서 모스크를 보니 신기하긴 했다.



근처에 학교가 있는지 스쿨버스 두대가 지나가고 일순간 동물원의 원숭이 역할을 해야했다. 손 같이 흔들어주고,
어디선가 재키찬이라는 목소리가 들리고 씩 웃어주고. 아 뭔가 이게. 그래도 젊은이들이 밝군. 







동양인이 촌동네와서 헤매고 있으니 안쓰러웠는지 경찰이 다가왔다. 그리곤 난데 없이 여권을 달랜다. 그래서 줬더니
영어를 못읽는다(?)며 어디에서 왔냐고(!)
영어도 거기가 끝. 그후 자기가 커피 사주겠다고 데려갔다.
우리의 대화는
!@#@#%!%$% 커피? #$!@$@%$!% "
 "오케이"
역시 영어 잘못하는 사람들이 편하다. 그리고 사람도 좋다(착각인가)



그러더니 밥먹으러 가잔다. 근데 자기들은 안시킨다. 비싸다는 듯 보였다. 세르비아 욕을 엄청해대는 것만 느낄 수 있었다.
물가 비싼게 그들때문은 아니련만. 미국,유럽 욕은 내가 한국어로 해주고,
 관심있어 하길래 한국말로 인사도 가르쳐줬다.
여기에 또다른 한국인이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코소보의 첫인상은 따뜻했지만, 조금씩 그들의 생활을 알아가고, 이곳의 티비를 보며 마음이 어려워졌다.
말도 안되게 많은 영화채널 성인채널. 그리고 뉴스 속의 시위.
불현듯 우리나라가 생각난다. 미국 밑에 기생한다고 착각하지만 알고보면 난도질 당하는 불쌍한 나라국민들도.

여기도 국경이 생기면 좋겠는데, 대신 딴나라 분들은 나가주시면 안될까. 
예전부터 자주하던 생각.
왜 남들처럼 똑같은 출발선, 0점, 밑바닥에서 시작할 수 없는걸까.
한참 뒤에서 혹은 누군가에게 끌려, 혹은 부속되는 걸 견디어야 할까. 신은 어떻게 생각하고 이런 상황을 나와 이들에게 주는건가.

프리즈렌[Prizren] Unfinished

여기가 그 슬라브 민족의 성지인가. 세르비아인들이 자주 그랬다.
코소보는 자신들 선조의 땅이라고, 절대로 양보할수 없다고.
그런 땅에서 genocide는 왠말인가. 역사와 종교 인종 따위 팔아서 얻고자 하는게 뭘까.
미친듯 아름다운 프리즈런과 주변 산들의 풍경에 눈부셔하다가도. 성인인구의 70%가 실업자인 말도 안되는 나라 형편을 못보고 지나치지 않기를.
이곳이 불과 십년 전 있었던 끔찍한 살육의 현장임을 망각하지 말기를.





협상은 필요없다. 독립을!















교회 건물은 전부 출입금지다. 부서져있거나,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거나.






























평화스러워 보이는 전경. 그러나 산 밑의 가옥들은 전쟁때 폭탄 맞은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




















몇몇교회는 평화유지군의 주둔지가 되기도 한다. 가까이 가서 말좀 걸어보려했더니 총구 들이밀면서 저리 가란다.
지들이 설마 쏘겠어?











사실 크지 않은 도시라 눈에 보이는 게 도시의 전부다. 한두시간이면 크게 한바퀴 돌수 있을 만한.










모스타르가 연상되는 풍경이다. 비교적 잘지내는 그들과 달리, 이곳의 교회는 대부분 못쓰게 되어 있다.
물론 모스크는 사람들로 붐빈다. 인종이나 전통보다, 사실은 종교가 이들 다툼의 원인이 되지 않나 짐작해 본다.










아직 복구되지 않은 가옥들. 근처에 포탄이나 지뢰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써있는데, 그런게 있을거 같아 보이진 않았다.
사진찍는 위치의 언덕은 뭐랄까. 커플들의 데이트 명소였다. 수풀사이사이에서 애정행각들이 벌어지고 있다.

























클린턴 레스토랑이라니!















프리즈런 버스터미널. 처음 도착했을때 못찾아서 많이 해맸다. 버스기사는 영어를 못하고, 터미널엔 프리즈런이라는 표지판 따위 없고,
순전히 느낌으로 '여기겠구나' 하고 내려야 했다. 





프리즈런과 프리슈티나를 잇는 이 나라의 가장 번화한 도로인듯. 확장을 위한 공사가 한창.





터키스타일과 동유럽스타일의 적절한 믹스. 맛은 별로.






소가 걸어다니는 도로라니.


내 나라 밖의 전쟁이라고 해봤자 그저 그런 슬픈 감상에 빠질만한 것일뿐이었지만,
그 땅을 밟음으로써 그들에게 일어났던 어둠과 피의 그림자를 엿보게 된다.

가장 최근의 전쟁, 아. 이라크전쟁도 있었군,
어쨋든 대학에 다니며, 외신을 통해 '사람이 죽고있군'하고 짧게 지나쳤던 과거가 부끄럽다.
전쟁땐 나토가 4만명 세르비아가 3만명 죽였다는데, 역시나 대부분이 민간인 희생자다.
그렇지. 전쟁이라는 말보다는 '인종청소'로 더 잘 알려지지 않았던가.
누가 고안해낸 단어인지 참.

'크로아티아도, 보스니아의 무슬림들도 우리를, 또 서로 살육하지 않았는가' 하고 세르비안들이 말하는 건.
우리가 이 땅에 살며 합리화하는 사소한 것들과 어느만큼 닿아 있나.

프리슈티나[Prishtina] Fake Peace

코소보의 수도 프리슈티나. 이유없이 조용한 도시다. 그리고 씁쓸한 장소다.
TV를 틀면 매일 같이 집회가 있다고 해서 나가보면 금새 끝나버리고,
다른 지역에서의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안의 무력충돌 장면은 여과없이 TV로 보여주면서
이 큰 도시에서는 볼 수가 없다. 머무른 시간이 짧아서일까. 일주일이란 시간은 짧을 수도 있다.
하지만 TV는 그렇게도 급박하게 상황이 돌아간다 비춰주고, 도시는 휑하다.

UNMIK 뒷담장.
아마도 U.N mission in Kosovo 였던듯. 동네 버스만큼이나 많은 숫자의 유엔차량이 도시를 활보한다.




수퍼마켓을 일층에 둔 세속화된(?) 모스크와 이리저리 걸친 전깃줄이
한국의 그 많은 상가 교회들을 연상시킨다.



도시를 돌아다니면 흔히 볼 수 있는 아이러브 유에스에이 포스터. 정말 사랑하나.















2.3유로의 식사시간. 오랜만에 큰돈들여 먹다. 이렇게 비싼걸 현지인들은 어떻게 먹는걸까.
어딜봐도 공장이나 회사건물은 보이지않는데.그렇다고 농사 짓는 땅도 눈에 띄지 않고...
말도 안되는 물가.
그럼에도... 프리슈티나는 정말 심심해서 먹을거라도 챙겨먹어야한다.







공원에서 꼬마들 삥뜯는 일진들을 발견했다. 이건 뭐. 딱 우리의 전철을 밟는건가.







약간 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동양적인 기왓장이 반갑다







코소보 박물관. 정말 개뿔 아무것도 없다. 수백년된 조각과 사료뿐. 근대와 현대를 설명해줄 수 있는 어떤 것도 찾지 못했다.
그렇지. 세르비아 사람들이 다 가져갔겠지...







응? 총은 가져오지 말라고? 총기 휴대하는 사람이 많은건가?



간혹 이렇게 큰 트럭들이 있는 걸로 봐서 중공업단지가 있는듯하기도 하고. 사진찍어달라며 포즈를 잡는 아저씨.















1999년 코소보 내전 당시 죽은 이들의 영정이 코소보 종합청사 벽에 여전히 붙어있다. 조용히 묵념하고 지나가기엔 너무나 많은 숫자.











광장에서 스트릿 바스켓볼 리그를 벌이고 있다. 아무나 다 덩크를 꽂아넣더라는.







뒷편에는 스태이디움이 있고 1층에는 쇼핑센터 2층에도 뭔 센터. 우리나라로 치면 코엑스 같은곳.
뉴 본 이란 말은 좋은데 말이지.







시내를 약간 벗어난 주거지역. 녹지도 많고, 깨끗하다? 아.계속 뭔가 이상하다.



머물렀던 게스트 하우스. 위치를 몰라 물었더니 '프로페서 집'이라고 하면 택시기사가 태워준다고 했다.
물론 영어로 대화했기때문에 정확하지 않고, 택시가 타기 싫어 두시간 여를 걸어 해매다 발견했다. 너무 더운 날이어서 첫날은 씻고 잤다.






세르비아에서 사온 까르보나라. 라면이 먹고 싶어서 이걸로 때우기도. 근데 은근히 맛나다.



가끔은 소스대신 고추장으로 비벼먹어도 별미.



쌀은 어디에든 파니 밥도 해먹고. 아..프리슈티나 얼마나 할 게 없었으면 밥을 이렇게 해먹었을까.



게스트 하우스 주인장. 자기네 집이 가장 저렴한 숙소라고 자랑하고 있다.
사실이긴 하다 -_-;;



도시 초입의 아파트촌.



빌 클린턴이 뭐 어쩌라고. 프리슈티나의 명물 '빌 클린턴 도로' 근처.



"Dude, it is done!" 라는 뜻이란다. 코소보 내전이후 독립을 바라는 이들의 슬로건. 발음 좀 알아올 걸 그랬다.
위의 얼굴은 전쟁 당시의 전설적인 장군(Adem Jashari)이라고.
저 모양을 한 티셔츠를 길거리에서 판매했는데, 품질이 도무지 사고싶지 않은 수준.


아직 여권에 흔적이 남지 않는 나라 코소보에서,
보따리 장사를 하는 듯 보인 중국인 1명을 제외하곤 동양인 구경조차 못했다. 그땐 왜그런지도 몰랐고, 쪽팔려야하는지도 몰랐다.

사실, 코소보를 떠나며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들었던 안타깝고 먹먹한 마음은 아직도 가시지 않았다.

재미없는 생각들을 정리해보자면,
아직까진 발칸에 지대한 영향력을 가진 러시아와
카스피해의 자원을 결코양보하지 않으려는 깡패국가 미국,
 그리고 돈으로 평화를 사고파는 EU들의 놀이터가 여기.

사실 클린턴의 '인도주의'나 부시의 '침략'이나 당하는 이들 입장에선 다를 바 없다.
푸틴은 코소보의 마피아와 마약때문이라고 하지만 그걸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 누가 있을까.

미국은 왜 유독 코소보의 독립만을 지지할까. 팔레스타인은? 쿠르드족은? 티벳은?
쪽팔리게도 내 모국은 미국눈치를 보고 이들의 독립을 인정했다.
그들 덕분에 난 안전을 보장받은 여행자였는지도 모르겠다.
좋다. 2008년 2월 17일(코소보 독립선언)은 특별한 날이라고 해두자. 

그럼 이제 묻자. 내 나라는,
 돈과 이권을 넘어 소수의 목소리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나.
앞으로는 그런 맥락에서 신선한 결단을 내린건가. 코소보의 경우도 그런건가.

독립1주년이 지난 얼마 전. KFOR와 EUMIK가 점차적으로 철수할 계획을 밝혔다.
얼핏 지나가며. 이제부터라도 평화와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이 펼쳐질 이땅에
내기 좋아하는 부자들의 체스놀음 따위 일어나지 않기를.

부드바[Budva] Almost Paradise

발칸반도 최고의 휴양지.
듀브로브닉의 성곽이 더크고 해수욕장이  더 많았지만
올드타운과 바다가 바로 어우러지는 부드바의 그것만은 못하다.

마을 자체가 레저타운이라 현지인과의 접선은 힘들지만, 여행에 지친 몸을 쉬어가기는 딱 좋은 곳.




호스텔의 밤. 저녁이면 이렇게 모여 파티를 벌인다. 술이고 안주고 누군가가 사와서 걍 준다.
이렇게 밤늦게까지 술마시고 낮에는 해변에가서 뛰어놀고...



올드타운 내부



















하여간 이런 낙서는 이제 지겨울 정도.



이곳은 거대 리조토단지. 축구장 골프장 테니스장에 조정,카약(?)을 즐길 수 있는 곳도 완비되어 있다.
대부분 고급호텔에 딸려 있지만 슬쩍가서 끼워 달라고 하면 끼워준다. 잔디밭에서 오랜만에 축구.
고급식당도 많지만 길거리 음식은 저렴한 편.























올드타운 건물들은 대부분 상점화되어 있다























문이 특이하게 생겨서.



피시 레스토랑인데 치즈를 나르고 있더라는.







요트 선착장에서 일하시는 여자분들.



역시 돈이 많으면 배를 타고 놀더라.



히포호스텔(HIPPO).



아무나 둘러앉아 놀기에 정말 좋은 호스텔. 여름 휴가철에만 운영하고 겨울에는 문을 닫는다.
숙박자 통계를 봤더니 작년에도 한국사람 한명이 다녀갔다. 왜 이렇게 좋은 호스텔로 오지 않을까.
부드바라는 미친듯한 해안가를 지나치나. 나중에 확인한 거지만 론니플래닛도
부드바의 뜨거운 햇살을 맞으며 바닷가에 앉아 모래성을 지어보라고 어드바이스 한다.



캐서린 뉘른숄베르그(?)던가..성은 기억이 확실히 안나지만
약간 아줌마 캐릭터를 가진 여자애가 있었는데  저녁마다 쿠키를 구워준다.
직원이 아니고 매년 이곳으로 휴가를 오는 여행객인데 친절하기도 하다. 이후 나랑 같이 다니다가 듀브로브닉 못미쳐 있는 공항에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덴마크던가 노르웨이던가. 아줌마처럼 헤어질러니 눈물을 글썽였다. 뭐야 얘. 서양애들도 성격이 다양한가 보다.



별도의 놀 수있는 공간도 마련되어 있음.티비도 보고 영화도 보고 게임도 한다.
이때가 한국에서 촛불집회가 한창일 때라, CNN BBC에서 한국뉴스가 쏟아졌다.
같이있던 애들이 니네나라 왜그러냐고 자꾸 물어보고, 설명하기 꽤나 힘들었다.
"미국한테 왜 당하냐. 너네 나라 부자 아니냐"
"대통령이 미쳐서 폭주해서 그렇다" 하면,
"니네들이 뽑은거 아니냐?"
"........"
할말 없어지는 상황.







사진엔 잘나오지 않았지만 마을 뒤는 높은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꽤 높다.
사진은 실제 보이는것보다 가까이 있습니다.



저 투명한 물. 태양.

포드고리차 사진도 어디론지 사라졌다. 동행하던 독일애가 귀찮게 굴어서 피해다니다가 메모리도 도망갔다. 포드고리차는 산맥(디날 알프스의 꼬리) 너머에 있고,
산을 넘어서 부드바에 도착하는데, 새벽에 이동하며 보니 산세가 특이하고, 민가도 드물어, 외계에 온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코토르[Kotor] Vestiges of Medieval

몬테네그로는 세르비아에서 독립한지 이제 갇 3년 된 신생국.
그나마 구 유고 에서 문제 없이 분리된 편이다. 코토르는 부드바와 함께 관광수입으로 이들을 먹여살리는 동네로 보임.
올드 타운과 바다(호수가 아니라 바다다) 그리고 산과 성이 연출하는 코토르의 분위기는 특별하다고 밖에 표현못하겠다.

올드타운 밖의 현지인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밥을 먹으니 신기한듯 이것저것 물어본다. 한국단체관광객들이 자주 온다더라.
자기네 가게도 들렀으면 하는데 올드타운과 바닷가 호텔만 다닐뿐이라고. 




























위의 보이는 교회의 뒷문을 들어가면 한국스타일의 기도처 같은 게 있다.
 무슨 유아세례 같은 의식을 하던중 슬쩍 들어가 봤음.
다른 여행객 두명에게서도 이곳에서 유아세례를 하는 모습을 들었다. 이걸로 돈버는 곳인가 싶기도 하고. 











오래된 성에 어울리는 뒷골목. 그리고 오래된 벽돌과 낡은 건물. 돌 바닥.















론니플래닛에 나온 사진 따라하기. 올드타운 뒷산은 재미삼아 올라올만 하다. 올라오는 길은 여러갈래인데.
 5시 이후던가. 저녁때 가면 돈받으시는 분이 퇴근 한다. 적당히 해지기 전에 올라가야 풍경도보고 안전하게 내려올듯. 























이날이 일요일이었나? 잘 기억은 안나지만 동네 조그만 교회에 종이 매달려 있다.
촌스럽게도 종이 쳐보고 싶어 몇차례 당긴 후 도망쳤다.



한 오래된 건물을
못들어가게 막아놔서 뭐하는 곳인가 사진을 찍어본 결과 3겹에 걸친 쇠창살이 나온다.
평범한 사람들 사는 곳은 아닌듯.


































부자들은 요트타고 논다더니 딱 그렇다. 근처 호텔에 가보니 다들 뱃놀이 나왔나보다. 어딜가나 세일링 얘기만 한다.
약간 부러웠다. 난 저 산에 올라느라 힘빼는데 한가로이 뱃놀이라니.











아직 재개발되지 않은 공장 건물 따위가 많이 보였다. 이곳 역시 발칸분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 있지 않은 듯.















페라스트던가. 코토르에서 버스타고 30분쯤 가면 나오는 동네에서 밖에 보이는 멋진 섬.
섬이름은 세인트 조지란다. 소나기를 뚫고 버스에서 내려 섬까지 가는 배편을 알아보다
필요 이상의 가격에 쩔어 다시 듀브로브닉행 버스에.



 



흔들리는 버스에서 사진찍으려니 영..

모스타르 - 사라예보 기찻길과 더불어
가장 멋진 풍경을 자랑하는 코토르 - 듀브로브닉 버스길.
북유럽의 피오르드를 떠오리게 하는 해안가(바다에서 불과 몇센티 떨어진 곳의 도로)를
달려보자. 내가 좀만 더 깡이 있었으면 버스드라이버한테 천천히 가자고 했을텐데.
거짓말로 화장실이 급하다고 하고 내릴걸... 하는 후회를 남기는 길이다.
이 도로를 다시 가게된다면 꼭 걷거나 자전거를 타겠다. 

듀브로브닉[Dubrovnik] Rubberneckers

아드리아해의 진주라는 듀브로브닉.
바닷가에 있는 작은 성곽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관광객 정말 많다. 온 유럽의 아줌마, 아저씨들이 다오셨나보다.

올드타운이라는데 후미지고 지저분한 골목들 찾기도 힘들고. 
이놈의 지중해성 기후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다가도  
사진만 찍으려고 하면 비가 쏟아진다. 뭐 이게 유럽인가. 









가이드 북을 뒤지면 몇백년된 교회 몇백년된 문 또 공연장 기타 등등 많지만, 별 감흥 느끼기 힘들었다.
 그냥 돌바닥 밟고 골목골목 돌아다니며 벽돌에 낀 이끼 만지던 기억만 남았네.



관광객 정말 완전 많다 ;;;



































빨래 널어놨는데 비가 왔다. 그래도 빨래 안 걷더라. 다시 개일 걸 아는건가.



















우측에 보이는 섬이 해변으로 유명하단다. 누드비치도 있다더라는 ;;;







마을 곳곳에 있는 갤러리와 박물관에 입장 할 수 있는 통합 티켓이 있다.
좀 한가한 갤러리에 가서 큰돈(?)을 내밀며 거슬러 달라했더니 잔돈이 없다며
'여긴 그냥 보고 다른 데 가서 사시게나'라고 하네. 그런식으로 3-4군데 구경했다. 당연히 표는 안샀다.







올드 타운 밖의 마을.















인증샷. 같은 민박에서 머문 일본 신혼부부를 올드타운에서 우연히 만나 억지로(?)











낙서판에 한글이 빠질 수 없다














































듀브로브닉 물가는 상상을 초월한다. 같은 나라 안에서도 물가가 이렇게 많이 다를 수 있는건가.
빵과 조각피자로 연명해야 했던 안타까운 동네. 현지 시장조차도 비싸다! 피시방도 비싸다.

지도를 보면,
듀브로브닉은 크로아티아 영토지만 보스니아와 몬테네그로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있다.
육로로는 연결되지 않아 국경을 몇번 지나쳐야 한다. 국경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벌어졌을까.

모스타르[Mostar] Edge of Peace on the Bridge.

모스타르는 오래된 다리라는 의미. 멀리 보이는 저 다리 이름이 Stari Most.
저 다리에서 마을의 지명이 연유하지 않았을까.
 
오래전엔 다리를 중심으로 한 편엔 카톨릭교인들이 다른 한 쪽에는 무슬림들이 별 문제 없이 살아왔으나
보스니아 내전을 통해 크로아티아계(카톨릭)의 공격에 의해 다리는 무너지고 관계는 악화된다.
전쟁 후 다리는 재건되고 상처와 앙금을 가슴에 묻고, 다시금 더불어 잘살아보려고 노력한다.

마을 주민 몇몇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쉽지는 않아보인다. 서로의 형제를 죽인 기억이 그리 쉽게 잊힐리 없다.
아직도 상대방의 잘못이라고, 지금도 상대편이 자신들을 위협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적어도 자신이 저지른 일들은 후회하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에게서 희망을 찾아보려는 노력은 무의미한 건가.












다리 위 관광객들.



위의 다이버들. 이 마을 젊은이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리위에서 다이빙을 했다고 하는데.
결국 지금은 돈 주면 대신 뛰어내려 주는. 꽤 높다.



거리 상점의 물건들.  1년째 내 컴퓨터 바탕화면.



항상 손님이 많은 마이다'룸! 신발장이 모자란다. 나중에 침대가 꽉 차자 마이다가 예전에 살던 집까지 손님 용으로 내놓더라. 



푸딩 비스무리. 마이다가 디저트를 만들어줬다. 저녁이면 이곳(발코니)에 모여 웃고 떠들며 즐긴다.



친절한 아줌마 '마이다'와 그의 유쾌한 동생 '바타'를 어떻게 잊겠나. 꼭 보스니아 국기를 배경으로 찍어 달란다.
아줌마라고 부르면 싫어한다. 결혼 전인듯 싶으니 누나라고.  



유로2008 크로아티아의 경기를 앞두고 꼬마들이 집밖으로 뛰어나와 응원을 펼친다.
그러나 여기는 보스니아. 이들을 향해 손 흔드는 건 나 뿐이다.



론니의 모스타르 지도는 너무 작다. 지도 밖으로 한참을 돌아다니다 마주친 조형물. 마을 구석 언덕에 있다.






관리는 잘 안하는 듯.



마을이 내려다 보인다. 갑작스런 소나기와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의 반복. 지친다. 동네 마실 정도나 하는 수밖에









총알자국 포탄자국 재건축되지 않은 건물들.





















멀리 보이는 모스크와 교회의 첨탑. 코소보에서의 최악을 보고 난 뒤여서 그랬는지 나름 가슴이 벅차다.



참혹한 전쟁을 겪은 뒤에 이 정도라도 공존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코소보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풍경이 아니던가.
평화를 향한 첫걸음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는 거다. 여전히 용서하기 어려울지라도 말이다.






비 오는 사진이 왜 없는지 모르겠지만, 저 돌 바닥을 비를 피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기억이 있다.
빵이 지겨워져 케밥과 유사한 형태의 꼬치를 사먹기도. 
마을 남쪽 산 꼭대기의 대형 십자가는 예수님의 그것이 진정 맞는건지 내내 불편했다.  






남들도 다 찍는 론니플래닛에 나오는 사진과 비슷한 각도.










 Don't Forget
잊지 말자는 몇가지 다짐.
여기. 그 때. 그리고, in your head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 대해 특히 이곳 모스타르와 사라예보를 잘 설명한 블로그가 있어 소개한다.
http://blog.naver.com/warrenhur 
발칸 지역의 역사에 관심이 많으신 분인 듯하다.
사진은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찍고 편집되었으나 그렇게까지 반응해도 무방한 곳이
바로 여기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연방이다.

모스타르[Mostar] Full Nature

예상보다 모스타르에 오래 머물렀다. 해볼 수 있는건 다 해보자는 차원에서 Bata(바타)의 투어에 참가했다.
단체관광이라니. 어떻게든 보스니아 곳곳을 보려면 방법이 없다.
한국에서나 보던 봉고차를 타고 나선 Bata`s tour! 만족.

 40분쯤 시골길을 타고 달리니 POCITELJ에 도착(정확한 발음을 몰라 한글로 지명을 못옮기겠다)
13세기 언젠가 헤르체고비나의 성으로 투르크제국의 공격을 저지하던 곳이라고. 폐허가 된 성 아래엔 중세시대 마을이 그대로  남아있다.
당시 보스니아 중심부로 가는 도로와 강은 이곳뿐.

관광지로 개발하려는지 조그만 갤러리도 보였고, 오래된 모스크도 보수공사중. 물건파는 아이들도 있지만 순박하다.


Bata는 착한편(?).


성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


Neretva 강과 근처 마을.


일행중 동양 여자가  있어 사진찍어달라 했더니 자기는 미쿡사람이란다 젠장.


오래된 마을의 문이 한국의 그것과 비슷한 정겨움이 묻어난다








보스니아는 어디를 가더라도 전쟁의 흔적이 남아있다.


저 멀리 폭포가 보인다. 여기가 KRAVICE


그래서 봉고차를 세우고, (나름 벤츠다 ;;;)





물가로 뛰어들었다. 초여름이지만 정말 추웠다. 꽤나 깊은데도 생각없이 덤비다가 익사할지도 모른다.
물에 들어가고 나서야 내가 수영을 잘한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저 멀리 폭포 아래까지 간 녀석들도 있다.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난 추웠다. 몬테네그로 구멍가게에서 산 내 수영복.





다음코스는 Medugorje 라는 가톨릭 성지인데 virgin Mary를 기념한 뭔가 있는 듯 했지만 보스니아 까지 와서 기독교 문명보고 싶지 않아 패스.
그래서 대신 간 또 다른 중세 성의 흔적. ('중세'는 아무리 봐도 정치적 단어지만 마땅히 다른 단어 못찾겠다)


여기저기 데려다니다가 머무른 이곳은 당시의 화장실이었다고 한다.
어떻게 볼일을 보는지 한참 설명했지만 기억 나지 않는다. 영어 기억력의 한계.





위 성주변 근처에 마굿간이 있었다. 바타는 종종 오는 듯했고, 많지 않은 돈을 내면 말을 탈수 있다.
그러나 저 동양계 미쿡아가씨가 말을 잘 다루지 못해 넘어졌고, 주인장은 전원의 요금을 받지 않았다.


투어의 마스코트. 첫번 들른 마을에서 태워서 물건을 팔거나 설명을 할줄 알았는데. 말그대로 동네 놀러나온 꼬마를
바타가 데리고 놀아준거였음. 귀여웠다.





투어다 보니 나혼자 굶기도 뭐해서 요리를 시켰다. 나쁘지 않았고, 보스니아 맥주도 나름 운치있었다.





Blagaj. Buna 강의 발원지가 저 동굴 아래 어딘가. 물은 얼음장처럼 차고, 그야말로 콸콸 쏟아져 나온다. 다이버들이 수원지를 찾아 몇차례 들어갔지만
수킬로미터는 될듯한 거리에 질려서 나왔다고. 바타의 설명일 뿐이니 정확할런지는...


이 건물은 Tekija 라는 16세기 만들어진 이슬람 수도원이다.





어둑어둑해져 창문에 불이 켜지니 분위기가 좀 난다.


수도원은 키스 금지. 다행.





같이 다니던 애들.  윗 사진의 꼽슬머리 청바지는 이태리 애. 나머지는 호주와 캐나다 애들.


보스니안 커피. 여기 오면 무조건 먹어야한다고 했다. 돈은 안받더라. 터키스타일이고. 쓰다.


모스타르 기차역. 요상하게 생긴 기차를 타고 사라예보로 ㄱㄱ싱

마이다의 동생 바타는 끊임없이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욕을 해댔다. 뭐 예상은 했던 바다.
주로 돈 많은 크로아티안이 마을 주변 땅을 사면서 크로아티안 마을을 점차 넓혀가 자신들은 갈곳이 없단다.
 세르비아의 총칼이나 크로아티아의 돈이나 다를 게 없다는 게 그의 설명.

때마침 유로 2008 스웨덴 경기를 하던 때. 이브라히모비치(보스니아출신)의 플레이를 보고 열광하는
나와 의기투합했다. 보스니아 내전을 피해 제3국으로 망명한 이브라히모비치의 부모.
아버지는 크로아티아계 어머니는 보스니아계. 전쟁과 다툼 중 적국의 남녀가 만난 것.
그리고 그들의 아들은 TV에 나와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사라예보[Sarajevo] Welcome to Sarajevo

모스타르에서 사라예보로 오는 기차길은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져 있다.
몇 번이고 중간에 뛰어내리고 싶었을 정도.
역시 중요한 순간에는 사진이 없다. 카메라 뒤적거리기도 싫었고, 카메라 때문에 한쪽 눈만으로 담기에 아쉽고.
무엇보다 내가 이 위대한 풍경을 표현하지 못할거라는 자신없음.  
 
어쨋든. 사라예보는 총알자국으로 나를 맞았다.


사라예보의 가이드북은 단순하고 명료하다.
내전중 몇 명이 죽은 거리. 폭탄 한방에 수십명이 몰살한 시장. 수만권의 책이 불타오른 도서관.


내전 시 유일하게 안전했다는 홀리데이 인 호텔. 영화 '웰컴투 사라예보'에서 봤던 바로 그.
이 반대편이 스나이퍼의 거리. 기자고 뭐고 나오면 다 쐈다던데.


내가 묵은 해리스 호스텔의 사무실. 저곳은 리셉션이고 위쪽 언덕길로 10분정도 올라가면 숙소가 위치.
가격은 아주약간 비싸지만 모스타르에서 만났던 여행자들을 피하기 위해 옮겼다.
일하는 친구도 친절하고(다른 호스텔에 묵는 애들도 픽업해줬다)
 가격도 흥정가능. 사라예보의 저렴한 숙소는 1박에 10-12달러 수준.  





사라예보 로즈!
폭탄자국을 없애지 않고 붉은 색을 페인트를 채워 넣었다. 그때를 잊지 말자는 다짐.








올림픽뿐아니라 챔피언스리그도 여기서 열렸었다. 만 여 명이 죽었다. 부상자 숫자는 셀수도 없단다. 최근 인구가 많이 늘어 7만 명인데.
한 집에 한 두명은 죽었단 얘긴가. 저렇게 둘러싸고 포격을 해대니 살아난게 이상타.  프리 보스니안 테리토리(안전지역)로 가기 위해선
공항을 지나야 했고, 그 지하로 사람들이 도망치고 식료품을 운반해 나머지 사람들이 버틸수 있었다고 한다.
나에게 설명해준 이는 지하터널을 들키지 않기 위해 미끼용 총알받이들이 공항 위를 달렸다고도 한다.(약간 과장한듯)


터널 박물관. Tuunel of Hope로도 불린다. 4년 동안 외부세상과 연결된 통로는 이곳뿐.








지금은 일부 구간만 남아있다.





길위에 탄피(불발탄은 아닌듯)가 박혀있다.


근처 민가의 총알자국들. 주소도 터널 25번지다.


느낌표 교통표지판도 있었던가.


사라예보 공항.








유럽형 외모를 지닌 이들이지만 안식일이면 모스크가 붐빈다. 문화는 좀 다르다. 술 담배 등의 규약에서는 자유로와 보였다.





쏟아진는 총알은 철문으로 막을 수 밖에 없었겠지.


도시와 영 어울리지 않던 EU 건물.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이런 묘지들이 가득하다.
숙연해지는 이유는 묘비에 새겨진 날짜는 거의가 1992년부터 1995년 사이라는 것.














역사박물관 외벽.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지만 박물관의 대부분은 보스니아 내전 당시의 전쟁잔해가 차지하고 있다.
총알자국에 별이라니. 무슨의미일까.


이것도 역사박물관 앞.


더 이상의 전쟁이 없길 바라는 이들의 염원 횃불. 종전이후로 꺼지지 않았다고 했었던가. 기억이 가물가물.
앞으로도 꺼지지 않길.








모스크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처자. 영어 잘하더만.

모자이크 국가.
일곱개의 국경. 여섯개의 공화국, 다섯개의 민족, 네 개의 언어, 세 개의 종교, 두 개의 문자, 하나의 국가.
과거 유고슬라비아를 설명하던 단어다.

그중에서도 가장복잡한 이 곳.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지금도 사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연방(크로아티아인 이슬람교도)과
스르프스 공화국(세르비아인)으로 나뉜 어정쩡한 형태.
인종청소를 주고받던 그들이 사이좋게 지낼리 없지만.
자기네 땅을 그렇게 나눠 줘야했을 그들을, 우리는 조금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안녕. 축축한 바람과 피빛 노을, Don't forget!

사라예보[Sarajevo] Did you have a fun?


부코예비나.

세르비아어로 '늑대들이 재미 보는 곳'이라는 뜻.
 세르비아 사람들이 외진 장소를 따로 부르는 말이다. 피터 마쓰는 'Love thy neighbor'에서
사람을 죽이기에 완벽한 장소라고 감상한다. 물론 사라예보는 외진 장소가 아니었다.



이슬람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약간은 동양적이기도 한 건물들과 사람들. 광장이름은 남기지 않아도 되겠지.









트램을 타고 조금 나가면 아담한 연못(Vrelo Bosne)과 공원이있다.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곳은 연못에 가기까지의 가로수길.
3km에 이르는 길이는 부담스럽기보단 상쾌했다. 언젠가 동유럽을 다시 온다면 그때도 여기서 쉬겠다.











빠싹 마른 몰골.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저 시계는 유럽시간으로 흐르고 있다.








시내 구경다니다가 아파트 촌에 신기한 리프트(곤돌라?)가 있어서 타봄. 물론 돈내는 거였는데 모르는척했더니 걍타랜다.





어떻게 사진을 찍어도 묘지들이 나온다.


길목을 지키고 있는 무서운 언니들.








모스크 사이사이에 교회들도 보인다. 미사인지 예배인지 하는데 말을 못알아먹으니.





동유럽은 정말 주말만 되면 뭔가 보여준다. 불가리아 세르비아와는 또 느낌이 새로운 민속 음악과 춤들.
조금 더 소박하고 정겨워 보이는 건 착각이자 편애일지도 모르겠다.























뭐. 프리 허그 해주겠다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다.


Miljacka river. 보이는 다리에서 아프리카 내전을 주제로한 사진전이 있었다.





기차시간 남아서 시작한 퍼즐. 하다보니 애들이 구경하다가 커피도 갔다준다.





몇번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유럽에서 가장 쎅시한여자가 많은 나라가 어딘지 알아? "
"난 사실 어디든 다 -_-;;"
"우크라이나 폴란드 보스니아!!!"
나도" 훗. 그렇군. 좋은 정보야"라고 받아쳤지만
그들의 과거와 오늘을 생각했을때 코피나도록 씁쓸한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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